인체공학 키보드 구매 전 확인해야 할 3가지 | 키보드 별 특징 정리
나는 무엇을 사든 그 물건이 사망할 때까지 사용한다. 일례로, 너무 많이 떨어뜨려 모서리가 다 찌그러진걸 억지로 다시 펴놓은 5년 된 맥북 에어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앞으로 5년 더 쓸 예정이다) 때문에 큰돈을 쓰더라도 한 번 살 때 가장 좋은 물건을 사려고 한다. 그래서 어깨와 손목이 아파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가격이 비싸더라도 나에게 딱 맞는 가장 좋은 제품을 찾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했던 점들을 정리하여 공유하려 한다.
인체공학 키보드 별로 특징과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직접 사용하고 구매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도 '스페시픽'이라는 업체를 통해 직접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배송지역이 아직 많지 않고, 아침시간(= 내가 출근길에 있는 시간)에 직접 그 키보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체험을 할 수 없었다. 만약 여건이 된다면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체공학 키보드의 특징과 형태
여러 형태의 인체공학 키보드가 있지만, 손목과 어깨의 부담을 줄이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래서 인체공학 키보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 중 일부라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손목이 꺾이지 않을 것. 둘째, 손목이 덜 회전되도록 할 것. 셋째, 어깨가 말리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이 요소들을 구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손목과 어깨가 아픈 이유
일반적인 키보드를 사용할 때는 보통 손목이 위로, 혹은 옆으로 꺾이게 된다. 위 그림에서 오른쪽 첫 번째, 세번째 형태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세번째 형태는 많은 사람들이 손목받침을 구매하여 해결하지만 첫번째 형태는 해결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일반적인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면 팔을 어깨보다 좁게 모으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날개뼈가 위로 들리고 어깨가 안쪽으로 말리면서 승모근이 발달하게 된다. 그렇게 승모근이 뭉치면서 점점 어깨 통증을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즉, 손목이 꺾이고 어깨가 말리는 이유가 모두 키보드의 크기에 팔과 어깨를 구겨 넣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보드가 작은 노트북을 사용하는 경우 손목과 어깨 통증이 더 심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할 때는 손바닥이 책상과 완전히 맞닿도록 손목을 회전하게 된다. 이때 팔의 뼈 두 갈래가 꼬이며 신경을 압박하게 되고, 이 자세가 오랫동안 유지될 경우 터널 증후군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손목 통증을 느끼는 많은 직장인들이 버티컬 마우스를 선택하게 된다. (관련글: [내돈내산] 인체공학 트랙볼 버티컬 마우스, 로지텍 ERGO MX 리뷰)
해결책1: 굴곡진 키보드 표면
대표적인 인체공학 키보드인 로지텍의 Ergo K860과 마이크로소프트의 Sculpt Ergonomic Desktop은 키보드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솟아있는 형태이다. 따라서 손목이 덜 회전하게 된다. 또한 키보드 배열이 양 옆으로 나눠져, 숫자키 쪽은 가깝게 붙어있고 스페이스키 쪽은 떨어져 있다. 그래서 손목이 옆으로 덜 꺾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해결책2: 스플릿 키보드
스플릿 키보드는 키보드가 두 쪽으로 나눠진 형태이다. 어깨 너비만큼 키보드 양쪽을 벌려서 사용할 수 있고, 따라서 팔을 좁게 모으지 않아야 손목이 옆으로 꺾이지 않고 어깨도 말리지 않게 한다. 거기에 각 키보드 판의 안쪽을 높여서 각도를 줄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역시 손목이 덜 회전하도록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ZSA사의 Ergodox-EZ와 Moonlander가 있다.
인체공학 키보드 구매 전 고려할 점
인체공학 키보드를 선택하기 전 다음 사항들은 꼭 고려해봐야 한다.
1. B(ㅠ) 키의 위치와 숫자키 유무
대부분의 인체공학 키보드들은 ㅠ키가 왼쪽에 있다. 이는 영어로 B를 입력할 때 왼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한국어를 입력할 때 ㅠ키는 오른손으로 입력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굉장히 불편해한다. 물론 오래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긴 할 것이다. 만약 ㅠ키가 반드시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면 선택권이 거의 없어진다.
또한 평소에 텐키리스를 사용하였다면, 그래서 숫자키가 있으면 마우스가 너무 멀어 오히려 불편하다면 이런 부분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숫자 키보드는 따로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숫자키가 필요하더라도 텐키리스가 마음에 든다면 과감하게 구매해도 될 것 같다.
이런 키보드의 구조적 문제는 변경할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 써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평소의 입력 습관과 자주 사용하는 키를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2. 가격
일반적으로 인체공학 키보드들은 꽤 비싸다. 그냥 10만 원은 무조건 넘는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비싼 경우에는 40만 원대까지도 지불해야 한다. 키보드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의 병원비를 미리 지불하는 것 같다.
가격이 정말 중요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인체공학 키보드의 효과를 내고 싶다면 한손 키보드를 추천한다. 시중에 게임용으로 왼쪽 부분만 있는 한손 키보드가 정말 저렴하게 많이 나와있다. 한손 키보드를 왼손으로 사용하고 일반 키보드를 오른손으로 사용한다면 키보드가 두 쪽으로 나눠진 스플릿 키보드의 효과를 저렴한 가격에 낼 수 있다. 이렇게만 해도 손목이 꺾이고 어깨가 말리는 것은 방지할 수 있다.
단점은 각 키보드의 단축키가 연동되지 않아 왼쪽의 Shift, Ctrl 키는 왼쪽 키보드의 키에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ㅃ'는 Shift와 'ㅂ'이 모두 왼쪽 키보드에 있어서 일반 키보드처럼 칠 수 있지만, 'ㅖ'는 'ㅔ'가 오른쪽에 있어서 오른쪽 키보드의 Shift를 눌러줘야 한다. 이게 은근히 불편하긴 하다.
3. 그 외
안타깝게도 인체공학 키보드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개개인의 모든 선호를 반영한 완벽한 키보드를 찾는 것은 힘들 수 있다. 일례로, 인체공학 키보드 중에는 무선 키보드, 멤브레인 키보드가 굉장히 제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Sculpt 키보드 + 마우스 세트와 로지텍의 ERGO K860 정도가 유명한데 둘 다 스플릿 키보드가 아니다. 스플릿 키보드를 구매한다면 유선 + 기계식 키보드라고 생각하고 찾아봐도 무방하다.
키보드 별 특징
가장 많이 언급되는 키보드들의 특징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 마이크로소프트 Sculpt 키보드 + 마우스 세트
- 가격: 12만 ~ 13만 원대
- 특징: 멤브레인, 무선
- 장점: 인체공학 키보드 중에는 저렴한 축의 가격. 숫자키는 별도로 제공되어 텐키리스로도 쓸 수 있다. 마우스까지 세트로 제공.
- 단점: 개복치. 게다가 키보드, 숫자키, 마우스 중 하나만 고장 나도 셋 다 A/S를 받아야 한다는 도시괴담이 떠돌아다닌다. - 로지텍 ERGO K860
- 가격: 15만 ~ 16만 원대
- 특징: 멤브레인, 무선
- 장점: 합리적인 가격. 로지텍 매장에서 체험하기도 편하다. 로지텍 이름값을 한다는 후기를 꽤 많이 봤다.
- 단점: 꽤 커서 들고 다니기는 힘들다. - 키네시스 Contoured Advantage
- 가격: $349, 국내 쇼핑몰 40만 후반 ~ 50만 초반
- 특징: 기계식, 유선, 스플릿 키보드지만 판은 하나다.
- 장점: 천년만년 쓸 수 있는 내구성.
- 단점: 엄청난 크기, 두께, 무게. 비싼 가격. - 문랜더
- 가격: $365, 국내 쇼핑몰 40만 원대
- 특징: 기계식, 유선, 스플릿
- 장점: 기판이 두 개라 비교적 작고 가볍다. 키를 일일이 커스텀할 수 있다. 핫스왑도 가능하다(키 스위치를 바꿀 수 있다).
- 단점: 비싸다. 경첩 부분이 고장 났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다. 두 개의 판을 연결하는 와이어와 컴퓨터에 연결하는 와이어를 둘 다 써야 해서 복잡하다. - Ergodox-EZ
- 가격: $354, 국내 쇼핑몰 40만 원대
- 특징: 기계식, 유선, 스플릿
- 장점: 문랜더와 같은 회사에서 만들기 때문인지 장점이 동일하다. 키를 커스텀하는 프로그램도 똑같다.
- 단점: 비싸다. 문랜더처럼 와이어가 두 개라 복잡하다.
그래서 내가 산 키보드는...
나는 우측 B키를 포기할 수 없었고, 로지텍 매장에서 인체공학 키보드를 체험해본 결과 스플릿이 아닌 키보드는 그렇게 효과가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깨가 넓은 편인 데다, 승모근이 뭉치지 않게 당겨주는 등근육이 약해서 어깨 통증이 쉽게 생긴다. 그래서 어깨를 활짝 열어젖히고 싶었다. 가격은 물론 저렴하면 좋겠지만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었고, 무선이면 좋겠지만 유선을 감수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멤브레인이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기계식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Ergodox-EZ를 선택했다. (관련글: [내돈내산] ERGODOX-EZ 인체공학 키보드 해외직구 과정 + 언박싱 후기) 키네시스도 고려해 봤다. 하지만 키네시스는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가 힘들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문랜더와 Ergodox-EZ를 두고 꽤 오랫동안 고민하긴 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Ergodox-EZ를 선택했다.
문랜더가 아니라 Ergodox-EZ를 선택한 이유
첫째, 어고독스가 더 내구성이 좋을 것 같았다. 문랜더는 엄지손가락 부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고 손목 받침도 아예 키보드에 달려있다. 따라서 그 부분이 경첩이 있는데, 외국 유투버가 그 부분이 약해서 고장 났다는 리뷰를 한 것을 보았다. 물론 수리를 맡길 수는 있으나, 해외에 보내서 수리를 받아 다시 배송받는 과정을 굳이 겪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 시간을 키보드 없이 기다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고독스는 틸트 키트 부분을 제외하면 내구성이 약해질 만한 요소가 없다. 그리고 틸트 키트 역시 고장 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나는 따로 케이스 없이 백팩에 대충 키보드를 쑤셔 넣고 이동하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열려 있는 틸트 키트도 굳이 닫아놓지 않는데, 그럼에도 여태껏 멀쩡하다.
둘째, 어고독스가 키 숫자가 더 많다. 어고독스는 키보드 안쪽에 3개씩, 바깥쪽에 5개씩, 엄지마다 6개씩 기능키가 있다. 문랜더도 안쪽에 3개, 바깥쪽에 5개씩 기능키가 있으나 어고독스보다 키 크기가 작고, 엄지에는 4개씩 기능키가 있다. 현재 어고독스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엄지 쪽 총 12개의 기능키 모두 알뜰살뜰 잘 쓰고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물론 레이어를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문랜더를 구매했어도 잘 썼겠지만, 키가 많으니 더 편하긴 하다.
셋째, 어고독스가 틸트 키트 숫자가 더 많다. 문랜더는 틸트 다리가 하나밖에 없고, 엄지 부분의 각도를 조절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손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면 엄지 부분이 아래쪽으로 꺾여있는 경우 사용하기 좀 불편할 것 같다. 반면 어고독스는 틸트 다리가 세 개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더 자유롭게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넷째, 어고독스의 키배열 상 ㅜ키 왼쪽에 기능키가 있어서 ㅠ키를 오른쪽에서 사용하도록 지정할 수 있다. 문랜더는 ㅜ키 옆에 기능키가 없어서 불가능하다. 한국어에서 ㅠ를 사용할 일이 생각보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오른쪽에 ㅠ키가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뭐 적응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적응할 필요 없는 걸 적응하긴 귀찮다.
문랜더가 어고독스보다 좋은 점은 아무래도 손목 받침일 것이다. 문랜더는 키보드 자체에 손목 받침이 달려있기 때문에, 틸트로 키보드의 각도를 변경하더라도 손목 받침의 각도가 함께 변경된다. 하지만 어고독스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대충 쓰거나 자체적으로 밑에 뭐라도 받쳐서 각도를 조절해줘야 한다. 나는 대충 쓰는 편인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어고독스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적응하고 나면 다른 키보드를 사용하기 불편할 정도다. 어고독스에 지정해놓은 키들이 너무 편하고, 특히 단축키나 매크로키를 지정해 놓은 것은 다른 키보드를 사용할 때마다 좀 귀찮다. 손목, 어깨도 덜 아프다. 45만 원이 아깝지 않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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